거액에 가게를 넘긴 동업자가 바로 옆에 똑같은 가게를 차리고 고객까지 빼돌리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장님, 가게 망했어요?
동업자의 배신, 카톡 한 통으로 시작되다
“사장님, 가게 망했어요?” 단골 고객에게서 날아온 카카오톡 메시지에 A씨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불과 몇 달 전, 동업자 B씨의 지분을 모두 인수하며 1인 사장의 꿈을 이룬 참이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B씨는 A씨의 가게 바로 옆 역세권에 똑같은 왁싱샵을 차렸다. 심지어 함께 일하던 직원까지 데리고 나간 뒤였다.
인수계약서에 '경업금지 조항(경쟁 업종에 종사하지 못하게 하는 약정)'을 넣지 않은 자신의 불찰을 탓하기엔 B씨의 행동은 선을 넘었다. A씨 가게의 고객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 “새로 가게를 열었으니 찾아와달라”며 홍보까지 하고 나선 것이다.
A씨는 “가게를 인수한다는 건 고객 명단이라는 핵심 자산까지 넘겨받는 것”이라며 “내 돈으로 키운 고객 정보를 이용해 내 뒤통수를 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상도덕을 저버린 동업자의 배신 앞에, A씨는 차가운 법의 심판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내 고객 명단은 '비법 양념장'
법적 '영업비밀' 될까?
전문가들은 B씨의 행위가 법의 철퇴를 맞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법무법인 쉴드의 이진훈 변호사는 B씨의 행위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고객 정보는 가게의 핵심 자산인데, 이를 무단으로 빼돌려 개인 영업에 쓴 건 명백한 '영업비밀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이 말하는 '영업비밀'이 되려면 세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 집만 아는 '비법 양념장 레시피'처럼
- 남들은 모르고(비공지성)
- 이 레시피로 돈을 벌 수 있으며(경제적 유용성)
- 레시피 노트를 금고에 보관하는 것처럼(비밀관리성)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A씨의 고객 명단, 연락처, 시술 기록 등은 앞의 두 가지 조건은 충족할 가능성이 높다.
영업비밀 아니어도 괜찮다?
'신의칙 위반'이라는 히든카드
하지만 마지막 '비밀관리성' 요건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법인 대환의 김상훈 변호사는 “고객 리스트를 암호화하거나 특정 직원만 접근하도록 하는 등 특별히 비밀로써 관리했다는 점을 A씨가 직접 입증해야 한다”며 “만약 평소 직원 누구나 고객 정보를 볼 수 있었다면, 법적으로 '비밀'이 아니라고 판단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A씨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할까. 김 변호사는 '히든카드'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민법상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위반을 주장하는 것이다. 계약 당사자는 사회 통념상 요구되는 신뢰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대원칙이다.
김 변호사는 “사업을 양도하고 대가까지 모두 받아놓고, 뒤돌아서서 기존 고객을 빼가는 행위는 신의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불법행위”라며 “설령 고객 정보가 영업비밀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싸우기로 결심했다면
'증거 확보'가 첫걸음
전문가들은 감정적 대응보다 냉정한 증거 확보가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법률사무소 유(唯)의 박성현 변호사는 “가장 먼저 고객들이 B씨로부터 받은 카톡이나 문자 메시지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며 “'B씨가 먼저 연락해왔다'는 사실을 증언해 줄 고객들의 진술서도 받아두면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구체적인 대응 절차를 제시했다.
증거가 확보됐다면, B씨에게 고객 정보 사용을 중지하고 데이터를 삭제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내 압박하는 것이 첫 단계다. 이후에도 시정되지 않으면 법원에 고객 정보 사용을 막아달라는 '영업금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형사 고소,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통해 본격적인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